데스드림 - 딸의 죽음에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영화의 주인공은 재혼한지 1년이 된 미모의 백인 여성이다. (CSI의 마그 헬겐버거의 젊은 시절) 그녀는 이 영화에서 나이에 걸맞은 성숙한 아름다움이 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주는 충격에 한없이 무너지다가도 갑작스럽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뭔지 모를 섬뜩함을 느끼게 만든다.(그 큰 눈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편 역에는 슈퍼맨으로 익숙한 크리스토퍼 리브, 사업 수완이 뛰어난 남자로 나온다. 영화는 크리스토퍼 리브와 재혼한지 1년이 된 아름다운 마그 헬겐버그가 파티를 하면서 시작한다. 파티에서 그녀의 딸이 천사 같은 모습으로 춤을 추고, 많은 사람들이 결혼 1주년을 축하하는 가운데 둘은 키스를 나눈다. 사건으로 발전할만한 그 어떤 단서도 시작 부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이 행복했으니 그 다음부터는 점점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그날 밤 딸이 잠을 자다가 무슨 소리를 듣고 깬다. 그녀는 엄마방으로 뛰어가고 한창 재미를 보던 엄마와 새아버지는 딸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관계를 중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아버지의 짜증스러운 표정. 클로즈업 장면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복선으로 보인다. 일그러지는 얼굴 표정에서 관객은 그가 딸을 귀찮아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리 대수롭게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 딸이 연못에서 보트를 타다가 익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여주인공은 딸의 죽음 이후 정신을 놓고 살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 사고로 자신의 절친한 친구 한 명을 잃게 된다.
이후 미모의 여인은 밤마다 꿈을 꾸게 된다. 몽유병에 시달리는듯 집안을 돌아다니는 부인을 보며 남편은 그녀를 이해하려 애쓰고 관객은 이 부부를 동정하게 된다. 그녀의 꿈에 등장하는 것은 딸의 환영이었는데 언제나 그랬듯 이러한 환영은 그녀에게만 보이며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점점 미쳐가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녀의 증세는 점점 심각해지고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동까지 벌이게 되자 결국 정신병원에 가둬지기까지한다. 여주인공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듯 보이지만 여기서 뜻밖의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별난 박사 한 명이 그녀의 말을 믿고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Thank you를 '생큐'라는 독일식 영어 발음으로 구사하는 이 별난여자는 이 영화의 유일하게 살아 숨 쉬는 캐릭터인데 그녀의 독일식 영어 악센트는 너무나도 독특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박사의 집에서 잠을 자던 미모의 여인은 자신의 딸의 환영을 통해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영화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게 된다.
마틴 도노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다. 나 역시 그의 모든 영화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인간미가 넘치는,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이것은 그의 긴 영화 경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영화들을 선택해왔으며 그러한 선택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쌓는 데 성공했다. 예의 잘 생긴 이미지를 코믹하게, 때로는 망가뜨림으로써 빛을 드러낸 조금은 독특한 배우이다. 물론 그의 모든 영화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여인의 초상>에서는 헌신적인 남자의 모습으로 많은 여자들의 눈물을 훔치게 했던 순정파. 나는 그의 선한 얼굴 표정에 넋을 잃어버렸고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데스드림에서는 감독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잠깐동안 카메오라도 나왔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마틴 도노반은 배우가 전업이면서 부업으로 감독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인데 원래 영리한 데다 영화 경험을 많이 쌓았기에 무난하게 연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괜찮은 시나리오와 구조, 사건이 진행되어 나가는 방식 등에서 튀거나 흠잡을 데 없는 자연스러운 연출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촬영감독을 선택하는데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본다. 별 메시지가 없는데도 뜬금없이 클로즈업을 오랫동안 느리게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던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에 명확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장면들이 있다는 것도 문제이다. 주인공 여자가 딸을 잃은 뒤 보여주는 표정들이 대표적인 것인데 얼핏 보면 딸의 죽음 뒤 주체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라고 넘겨버릴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 여러 번 나와서 관객을 헷갈리게 만든다는데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당황해했던 장면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도대체 마그 헬겐버거는 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궁금하다면 영화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