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호더인가? 물건정리를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Essays 2021. 10. 16. 00:32반응형
한국에 들어온 지 일주일 이상이 지났다. 언제나 그랬지만 2년간 캐나다에 살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이 있다. 우리 가족이 정리 정돈을 잘 못한다는 거. 물론 누구누구처럼 방에 쓰레기를 펼쳐놓고 사는 건 아니다.(그 사람의 경우 무언가를 흘려도 바로 닦지 않고 개미가 꼬일 때까지 가만히 내버려둘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고, 곰팡이까지 핀다고 한다. 이상한 냄새도 나고......) 하지만 물건 정리를 정말 못한다.
가령, 내동생의 경우 수첩을 참 여러개 가지가지로 사놨는데 그걸 중구난방으로 여기 저기 다 끼워놓아서 정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화장품 정리를 하기 위해서 다이소에서 2만원 어치 정도의 수납용(적재 가능한) 컨테이너를 사야했다. 그리고 정리를 다 끝낸 뒤에 동생이 유효기간이 지난 화장품을 구석 구석에 숨겨놓고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유효기간이 지난 화장품과 식품종류만 따로 모아놨는데도 박스 3개 정도가 나올 정도였다. 즉, 다시 말해서 동생이 갖고 있는 화장품의 2분의 1 정도가 유효기간이 지나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2018년까지인 것도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문구류, 주방용 아이템, 식품, 옷, 가방 등등이 어지럽게 여기저기 섞여서 뒹굴고 있었고, 책상은 책상의 구실을 하지 못한채 무언가가 가득 쌓여 있었고, 방은 발을 디딜 곳이 없어서 도대체 어떻게 잠을 자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동생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일단 다음과 같다.
1. 홈쇼핑을 비롯한 물건 사는 것에 흥미가 있고, 상자채로 어딘가에 쌓아놓는다.
2. 유효기간이 지난 것을 섣불리 버릴 생각을 못한다.
3. 어딘가에서 사은품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올 경우 물건을 분리해서 놔두지 못하고, 받은 그대로 어딘가에 쳐박아둔다.
4. 분명히 물건을 사놨는데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똑같은 것을 또 산다.(악순환)
5. 쓰레기가 나올 경우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모셔놨다가 나중에 청소하다가 치우는 경우가 많다.
6. 옷 정리를 한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옷장이 모자라고, 방바닥에 굴러 다닌다.
7. 평소 갖고 다니는 가방이 2종류라고 할 때, 나머지 가방들은 거의 쓸 일이 없는데도 여전히 갖고 있다. 비닐 포장을 뜯지 않은 가방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음.
8. 유통기한이 지나서 못 쓰거나, 못 먹는 것을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9. 비슷한 것이 최소한 2종류 이상은 있다.(콜라겐일 경우 다른 브랜드로 2개 이상이 존재한다.)
10. 잠을 잘 때 옆에 뭔가가 정신 없이 쌓여있어도 신경쓰지 않고 잘 잔다.(무질서 속의 질서가 있다고 믿는다.)
이것 말고도 많은 것이 있는데 이걸 보면서 영어단어 hoard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이 단어는 많은 수의 동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키우는 사람을 애니멀 호더라고 부르면서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내 동생은 결국 호더인 듯. 물건을 쌓아놓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고, 정리정돈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정리를 할 줄도 모르는 것 같고, 막상 정리를 하고 있어도 하나 하나 숨겨진 추억을 찾는다고 시간을 낭비해서 결국 제대로 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시간만 축내게 되기 때문. 심리적으로 보자면 옛날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옆에 놔두면서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물건 정리도 안 되고, 계속해서 새로운 물건들이 쌓여가기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는 듯 하다.
내 경우에는 필요한 물건만 딱 사고, 옷도 별로 없고(그래서 단벌 신사 소리를 듣고 좋게 말해서 미니멀리스트라고 갖다붙이기도 함), 정리할 것도 별로 없고, 막상 정리를 하게 되면 추억찾기는 안 하고 바로 같은 종류의 물건을 바로 바로 모아서 일사분란하게 끝내버리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만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 역시나 이런 성향이 많아서 어머니에게 맨날 야단을 듣곤 한다는 거. 한국에 올 때마다 매번 청소를 할 필요성을 느끼거나, 왜 이렇게 우리집은 돼지우리같냐는 생각만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느꼈다. 우리집 가족들이 호더라는 것을.....(엄마와 남동생은 제외.)
영어 단어 hoarder를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A hoarding disorder is where someone acquires an excessive number of items and stores the in a chaotic manner, usually resulting in unmanageable amounts of clutter. The items can be of little or no monetary value.
호더 장애는 누군가가 과도한 숫자의 아이템을 획득해,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저장, 일반적으로 관리할 수 없을 지경의 혼란으로 끝나는 경우를 말한다. 아이템들은 금전적인 가치가 전혀 없거나 부족할 수 있음.
이건 영국의 NHS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내용으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정도. 여기서의 혼란이 일상 생활을 방해해서 부엌이나 욕실을 사용할 수 없고, 방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부엌, 욕실 접근은 가능하지만 여동생 방에 접근하기 힘든 건 사실. ㅠㅠ NHS 사이트에 의하면 누군가가 물건을 치우려고 할 때에 물건의 주인이 화를 내서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아버지가 그렇기 때문에(어머니가 창고를 치워서 주차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서 아버지에게 물건을 치우라고 했더니 막 화를 냈으므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100프로 공감. 호더들은 물건을 끌어모으는 것을 장애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물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경우 물건에 애착을 투시하기 때문에 외로움과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하고(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음), 어떤 경우에는 어수선한 집안에서 자라서 물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분류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호더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언젠가는 이것이 필요할 것이다. 혹은 "이것을 사면 행복해 질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올 때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이 부분에서 동생과 아버지가 오버랩된다. ㅠㅠ 감상적인 이유나 물건이 아름답게 느껴져서, 유용해 보여서 물건을 보관하게 되고, 결국은 이런 물건들에 애착을 갖게 된다.
물론 책, 우표와 같은 물건을 수집하는 것과 호딩은 다른 개념이다. 수집의 경우 잘 정렬되어 있고, 접근이 용이한 반면, 호딩의 경우 무질서하고, 공간이 많이 필요하고, 접근하기 힘들다. 여기서의 가장 좋은 예는 신문 스크랩. 수집을 좋아하는 사람은 딱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보기 좋게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놓고, 호더의 경우 신문 그 자체를 그냥 산더미처럼 쌓아놔서 정작 뭐 때문에 모아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고 한다.
여러분이 호더라면 다음과 같은 항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 금전적 가치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것을 재사용하거나, 수리하려고 품목을 보관 또는 수집한다.
2. 항목 분류나 구성을 못한다.
3.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4. 요리, 청소, 청구서 지불같은 일에 어려움을 겪는다.
5. 물건에 집착해서 다른 사람이 물건을 만지거나 빌리는 것을 싫어한다.
6.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여기서 6개 다 포함이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기를 강력히 권고하고, 4개 이상이면 이미 꽤 심각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따르면 아버지의 경우 4.5개 아니면 5개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본인 스스로가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도 치료는 불가능하지 싶다. ㅠㅠ 이것이 심각해지면 최악의 경우 치매, 우울증, 불안장애로 이어진다고 한다. ㅠㅠ 호딩은 10대 시절에서부터 취미로 무언가를 모으게 되다가 나이가 들수록 상태가 심해진다고 한다. 100명 중 1명에서 2명 정도가 호딩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니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람을 한 두명 정도는 볼 수 있을 듯 하다. 만약 여러분의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판단해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꼭 요청해 보도록 하자. 당장에는 기분 나빠하고 분란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이것도 심리치료가 필요한 부분이라 나중에 해결이 되고 나면 도와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듣게 될 듯.(하지만 그게 우리집 가족이라면......ㅠㅠ)
반응형'Ess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항 호미곶(상생의 손) 및 일본인 가옥거리(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 나들이 (0) 2021.10.23 태화강 국가정원 나들이 (0) 2021.10.17 네이버 블로그 인플루언서로 선정된 후의 변화 (0) 2021.02.13 최근 밴쿠버 사진과 근황 (0) 2021.01.25 네이버 인플루언서 - 각종 혜택들(ft. 해외거주자) (0) 2021.01.15